박군은 참으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 냄새가 후끈후끈 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만날 때에는 그의 손을 잡고 싶고 그를 떠나서 생각할 때에는 위로 치떴던 눈이 저절로 아래로 내려 떠진다.
서로 오래간만에 만나 이 자리에는 술잔이 오락가락하고 이야기가 이리저리 구을 때이다. 술이 얼근히 취한 박군은 평상시에 늘 보는 그 충직하고도 기개 있어 보이는 얼굴을 번쩍 들더니만 자기가 우연히 겪은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대전에 가서 여관에 들어 있을 때에 그 집에는 젊은 주모(酒母)가 하나 있었소. 들리는 말에 그가 자기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서 몸이 팔려 이곳으로 왔다 합데다. 그다지 미인은 아니나 사람은 대단히 소탈하고 순직하여 보입디다. 내가 술좌석에 앉았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말로 ‘보아하니 나이도 젊고 한 여자가 당당히 시집을 가서 살 일이지 이게 무슨 노릇이란 말이요?’ 했더니 별안간 그 여자의 얼굴빛이 변하여집디다. 나는 혼자 생각으로 ‘마음씨가 과연 순박한 사람이로구나’하고 여전히 무심히 앉아 있다가 흘끔 바라보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괴여 가지고 옆으로 슬쩍 고개를 돌립데다그려.
‘무슨 곡절이 있는 여자로구나’하고 생각하였을 뿐이오.
- 본문 중에서
조명희 (1894~1938). 본관은 양주, 출생지는 충청남도 진천. 호는 포석. 일제강점기 『봄 잔디밭 위에』, 『김영일의 사』, 『낙동강』 등을 저술한 시인. 소설가,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