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쟁이다. 나를 이렇게 낮추어 소개하는 데에는 근 이십 년 동안 그림을 그렸음에도 수상 경력도 없거니와, 잘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 그림을 받아주는 화랑이 있는 것은 신통방통하다. 어느 날 우연히 들렀던 화랑에서 여사장과 몇 마디 주고받다 쉬이 친분이 생겼고, 한번 그림을 가져와 보라는 배려에 힘입어 그림 몇 점을 들고 갔던 것인데, 내 그림을 보던 여사장은 뭔가 남다른 느낌이 있다며, 자신의 화랑에 몇 점 갖다놓고 싶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 그림이 내 집 밖을 나가 화랑이라는 공간에 있게 된 데에는 특별히 내 그림을 애호한 여사장의 개인적 선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아니, 딱 한 번 팔렸다. 화랑의 여사장의 사촌 동생인 '이미호'라는 여자가 사갔기 때문이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본문 중에서
서란
소설가. 감성적 언어의 작법, 로맨스 소설을 집필한다. 공상적이기보다 현실성 있는 전개를 좋아하며 즐겨 쓰는 편이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이기성 혹은 암울, 갈등, 내면성이 잘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