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 중에서 순수, 흥미, 애정의 성격이 있는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되도록 여러 작가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5편은 단편이고, 1편은 장편이다. 시간을 들여 책을 읽다보면 평화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빈 시간 뭘 할까 싶으시면 이 책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뿌듯함도 생기지 않을까. 가벼운 독서를 통해 일상의 평정과 잔잔한 기쁨을 누려보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손이 면도칼을 집는다. 손도 그렇게 어여쁜 줄은 몰랐다. 갓 잡아 놓은 백어가 입에다 칼을물고 꼼지락거리는 듯이 위태하고도 진기하다. 이제는 저 손이 나의 얼굴에 닿으렸다 할때 나는 눈을 감았다. 사람이 경이(驚異)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 통성일 것이다. 나는 그 칼을 든 어여쁜 손이 이 뺨 위에 오는 것을 보는 것보다 눈 딱 감고 있다가 갑자기 와 닿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 경이스러운 쾌감을 줄까 하고서 눈을 감았다. 비누칠을 할 적에는 어쩐지 불쾌하였다. 그러더니 잔등에 젖내 같은 여성의 냄새와 따뜻한 기운이 돌더니 내가 그여자의 손이 와서 닿으리라 한 곳에 참으로 그 여자의 따뜻한 손가락이 살며시 지그시 눌리인다. 그리고는 나의 얼굴 위에는 감은 눈을 통하여 그 여자의 얼굴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보인다. 뺨을 쓰다듬는다. 비단결 같은 손이 나의 얼굴을 시들도록 문지르고 잘라진 꽁지가 발딱발딱 뛰는 도마뱀 같은 손가락이 나의 얼굴 전면에서 제멋대로 댄스를 한다. 그리고는 몰약(沒藥)을 사르는 듯한 입김이 나의 콧속으로 스쳐 들어오고 가끔가끔 가다가 그의 몽실몽실한 무릎이 나의 무릎을 스치기도 하고 어떤 때 나의 눈썹을 지울 때에는 거의 나의 무릎 위에 올라앉을 듯이 가까이 왔다. 눈이 뜨고 싶어 못 견디었다. 그의 정성을다하여 나의 털구멍과 귓구멍을 들여다보는 눈이 얼마나 영롱하여 나의 영혼을 맑은 샘물로 씻는 듯하랴. 그리고 나의 입에서 몇 치가 못 되는 거리에 있는 그의 붉은 입술이 얼마나 나의 시든 피를 끓게 하고 타게 하는 듯하랴. 그러나 나는 눈을 뜨지 못하였다. 칼 든 여성 앞에서 이렇게 쾌감을 느끼고 넘치는 희열을 맛보기는 처음이다. 면도질이 거의 끝나간다. 그것이 말할 수 없이 싫었다. 그리고 놈이 밥을 먹고 나오면 어찌하나 공연히 불안하였다. <본문 중에서>
나도향(1902~1926) | 본명은 나경손이며, 필명은 나빈이다. 대표작은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이다.
현진건(1900~1943) | 소설가 겸 언론인. "운수 좋은 날", "빈처", "고향" 등 20편의 단편소설과 7편의 중·장편소설을 남겼다.
이효석(1907~1942) | 작가, 언론인, 수필가, 시인. 호는 가산. "메밀꽃 필 무렵", "도시와 유령", "장미 병들다" 등의 작품이 있다.
김유정(1908~1937) | 소설가.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을 저술하였다.